나한테 가치있는 것, 사람들에게 가치있는 것.

빨래에서 냄새가 나길래, 그 냄새가 뭐때문에 나는지 찾아봤다.

습기가 많아서 그렇다 천천히 말라서 그렇다 그런 거 말고, 균의 이름이 뭔지 찾아봤다.

모락셀라 오슬로엔시스라고 한다.

피지나 각질 등 단백질을 먹고 산다고 한다. 단순히 세탁으로는 쉽게 죽지 않고, 물을 통해 다른 세탁감에도 전염된다고 한다.

해결하려고 하니, 산소계 표백제를 넣어서 세탁을 하면 된다고 한다.

…이런 게 너무 신기해서 블로그 글을 신나게 썼다. 그런데 써놓고 보니, 그냥 빨래에서 냄새가 나면 옥시크린 넣으면 된다는 글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파인만 씨의 글을 봤다.

http://genius.cat-v.org/richard-feynman/writtings/letters/problems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 – 리처드 파인만

토모나가의 제자이기도 했던 한 옛 제자가 파인만에게 축하 편지를 보냈다. 이에 파인만은 마노 씨에게 요즘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코히런스 이론을 연구하고 있으며, 난류 대기를 통과하는 전자기파 전파에 일부 적용하고 있습니다… 다소 겸손하고 현실적인 문제지요.”


친애하는 코이치,

당신에게서 소식을 들으니 정말 기뻤고, 또 지금 연구소에서 좋은 자리에 있다는 것도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당신의 편지를 읽고 마음이 조금 아팠습니다. 당신이 진심으로 슬퍼 보였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스승의 영향으로, ‘가치 있는 문제’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진짜 가치 있는 문제란, 우리가 실제로 풀 수 있거나,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우리가 어떻게든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여겨지는 문제 — 그런 것이야말로 과학에서 위대한 문제라 할 수 있겠지요.

내 생각엔, 당신이 말하는 그런 ‘겸손하고 현실적인’ 문제보다 훨씬 더 단순한 문제들을 택하길 권하고 싶습니다.

아주 사소하더라도, 당신이 정말로 풀 수 있는 문제부터 시작하세요.

그렇게 하면 작은 성공의 기쁨, 그리고 비록 아주 작은 일일지라도 다른 사람을 도왔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예컨대 당신보다 능력이 부족한 동료가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일이죠.

단지 ‘가치 있다’는 그릇된 생각 때문에, 그런 즐거움과 보람을 스스로 빼앗아선 안 됩니다.

당신이 나를 만났을 때는 내가 커리어의 정점에 있었고, 당신 눈엔 내가 무슨 ‘신에 가까운’ 문제들을 다루는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 다른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알버트 힙스는 바람이 바다 위에서 어떻게 파도를 만들어내는지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를 받아들인 건, 그가 직접 풀고 싶은 문제를 가지고 나에게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과는 실수가 있었어요.

나는 당신에게 문제를 ‘지정해줬고’, 그로 인해 당신은 어떤 문제를 흥미롭거나 중요하다고 여겨야 하는지에 대해 오해를 갖게 되었죠.

(즉, 자신이 뭔가 해볼 수 있다고 느껴지는 문제들이야말로 정말 흥미롭고 의미 있는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이 편지가 그 오해를 조금이나마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나는 당신이 ‘겸손한’ 문제라고 부를 만한 수많은 문제들을 다뤄 왔습니다.

그중 일부는 겨우 부분적인 성공만 거뒀지만, 그래도 나는 늘 즐겁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예를 들어 —

  • 매우 매끄럽게 연마된 표면의 마찰계수를 실험해보고 마찰이라는 현상에 대해 뭔가 배워보려 했던 일 (실패했습니다).

  • 결정체의 탄성 특성이 원자 간 힘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

  • 금속 도금을 플라스틱(예: 라디오 다이얼) 표면에 잘 붙게 만드는 법.

  • 우라늄에서 중성자가 어떻게 확산되는지.

  • 유리에 코팅된 막이 전자기파를 어떻게 반사하는지.

  • 폭발로 발생하는 충격파.

  • 중성자 검출기 설계.

  • 어떤 원소들은 L 오비트의 전자를 포획하지만 K 오비트의 전자는 왜 안 되는가.

  • 종이를 접어 아이들 장난감(플렉사곤)을 만드는 일반적인 이론.

  • 경핵(light nuclei)의 에너지 준위.

  • 그리고 수년간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난류 이론.

  • 물론, 양자역학의 “더 거창한” 문제들도 있죠.

우리가 정말 뭔가 할 수 있다면, 어떤 문제도 너무 사소하거나 하찮지 않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이름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죠.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아내에게, 아이에게 이름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의 동료들이 당신 사무실에 들어와 질문했을 때, 그에 답해줄 수 있다면 그들 사이에서도 곧 중요한 사람이 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나에게도 ‘이름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조차 이름 없는 존재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요.

당신이 지금 세상에 있는 자리를, 제대로 인식하세요.

자신을 평가할 땐, 어린 시절의 순진한 이상이나, 스승이 바란다고 잘못 짐작하는 이상에 기대지 마세요.

행운과 행복을 빕니다.

진심을 담아,

리처드 P. 파인만


이 글은 연구자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메이커, 개발자, 그 밖에 무엇이든 앞으로 어떤 것들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도 충분히 울림이 있었다.

세탁물에서 냄새가 나는 것의 원리를 알고 그걸 재발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은 나에게 있어서는 충분히 재밌고 보람있는 일이다. 꼭 무슨 엄청난 비결을 이야기하거나 깜짝 놀랄 만한 것들을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기준만을 따르려고 하다가 공허하고 위대한 꿈의 흔적만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커피 한 잔처럼, 모락셀라 균처럼.

더 현실에서, 더 직접적으로 보람된 일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