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ivation
단어쟁이들이 있다. 뉘앙스와 최근의 사용 맥락을 포함해서 어떤 단어를 어디에 붙이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나도 그런 이야기 하기를 즐기는데, 단어에는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안나 카레니나에 그런 구절이 나온다. 키티라는 인물이 휴양지에서 만난 바렌카라는 인물을 엄청나게 동경하게 된다. 키티가 찾고 있는 답을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인물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그녀를 ‘경건주의자’라고 표현하는 순간, 그녀에 대한 시각이 확 달라지는 것이 묘사된다. 원래는 자신에게 일어난 어떤 반짝거리는 만남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미 사람들에 의해 판단되고 이름붙여진 거라는 걸 안 순간 달라지는 마음.
그만큼 단어가 가지는 힘은 크다. 그래서 내가 이 블로그에서 하고자 하는 일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는 중요하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make라는 말은 develop과는 다른 느낌이다. develop은, 가치가 이미 사전에 정해져 있고 그것을 향해 뭔가 사물일 변화시키거나 배치하는 활동 같다. make는 가치 제안을 함께 만들어내는 느낌이 있다. 당연히 좋다고 정해져 있는 무언가를 하는 대신, 제안하는 상황 특유의 명랑함이 묻어 있다.
뭔가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제안하는 그 순간들, 혹은 그런 걸 하는 사람들을 많이 동경했던 것 같다. 일상 속에서는 많이 시도하기도 하는 것 같다. 다만 내 삶에서 그것이 중요하게 다루어진 적은 많이 없는 것 같다.
언제나 잉여였다. 예컨데 속편한 병장 시절, 아무도 안 시킨 분대별 축구팀 엠블럼 같은 걸 만들었다. 그걸 지켜보던 어떤 디자이너 출신 후임이 그렇게 말했다. ‘구색을 잘 맞추는 것 같다’
구색. 그러니까, 기획되고 계획되고 생산된 것에 붙이는 말이 아니다. 어떻게든 짜맞춘 무언가. Make에 어울리는 표현 같다. 다른 한 편으로는 완성도는 떨어질 것만 같은 표현이다. 사실이 그렇기는 하다.
앞으로 시간을 들여서 해 나가는 과정은 결국 이 완성도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일이다. ‘구색을 맞췄다’는 사실과 ‘퀄리티가 낮다’는 항상 함께 가는 것이 아니다. 결국 어떤 퀄리티를 추구하느냐, 어떻게 그 퀄리티를 파악하느냐는 cultivation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보여야 고칠 수 있고, 알아야 욕망할 수 있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서, 맑은 정신으로 고쳐 앉아 들여다보고 배우자.
우선은 내가 어떤 것에서 가치를 느끼는지, 그 안에 가치를 느끼게 하는 것과 가치를 느끼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어떤 게 있는지를 배우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은 어쨌든 나의 지금 기준에서 가치를 느끼는 것들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여행이든, 책이든, 전자기기이든, 소프트웨어든, 영화든, 가리지 말고 경험을 한다.
그 안에서 결국 내가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며 살아가야 할지가 만들어진다.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치를 부린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Cultivation이다.
고기는 먹어본 놈이 먹는다. 고기를 안 먹어 보면 고기를 계속 못 먹는 거다.